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니시카와 미와는, 데뷔 이래 항상 직접 쓴 오리지널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으며, 시나리오를 소설화하여 작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감독의 길로 들어선 니시카와 미와는, 2006년 오다기리 조, 가가와 데루유키 주연의 [유레루]가 일본 아카데미 주연상, 블루 리본 감독상 등 유수의 영화상을 석권하며 일본영화의 차세대 기수로 자리매김했고, 제59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정식 출품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직접 각색한 소설 『유레루』는 제20회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유레루]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었으며 원작 소설도 번역 출간되어 많은 관객들과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았다. 2009년에 발표한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은 한 시골 의사의 비밀을 그린 작품으로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그해의 일본 영화 1위에 올랐다. [우리 의사 선생님]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 다섯 편을 엮은 소설집 『어제의 신』은 제141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아주 긴 변명』은 니시카와 미와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제153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6년 서점대상 4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또한 직접 감독한 동명 영화 [아주 긴 변명]은 2016년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으며 상영되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창작자로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니시카와 미와는 죽음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사고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상실을 경험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짧고도 긴 여정을 완성했다. 『아주 긴 변명』은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과거의 자신에게 남기는 고백이며, 더 이상 변명을 늘어놓으며 살아가지는 않을 내일의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하다.
책머리에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황금기였다고 일컬어지는 세종시대를 조명한 소설은 많다. 그 많은 소설을 내가 과문(寡聞)한 탓으로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몇 편을 읽으면서 그 시대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조명해보고 싶은 욕망으로 이 소설에 4년간 매달리게 되었다. 지금은 <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에 개방되었지만, 그때는 국역 <태종실록> 10권과 <세종실록> 36권을 모두 사서 읽었다. 실록을 읽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고, 소설을 쓰는데 2년이 걸렸다. 이 소설에서는 궁중과 사회의 비화나 또는 백성들의 삶을 속 깊이 조명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들은 이미 많은 문헌과 문학작품들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우리 역사 인물 중에 가장 현상(賢相)이었다고 알려진 황희와 맹사성, 평안도에 4군을 설치한 최윤덕과 북방에 6진을 개척한 김종서 등 당시의 대왕세종과 신하들 간의 군신관계를 주제로 하여 정치, 경제, 국방, 문화, 외교를 중점으로 좀더 다른 시각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대왕세종의 성군됨의 자질은 곧 인물을 보는 안목이었다.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능력껏 기량을 발휘하게 하는 용인술! 그 용인술은 곧 군신간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서로 간에 굳건한 믿음이 없었다면 성군도 충신도 명장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튼튼한 국방력에 중점을 두고 무기 개량에 전념하였고, 그 총책을 황희와 최해산에게 맡겼다. 특히 화약무기 개량에 주력하여 재위 7년이 되는 1425년 5월에 최해산에 의해 4종의 화포(火砲)가 주조되었다. 임금은 주조된 화포에 정식으로 그 명칭을 지었다. 대화포(大火砲)를 천자총통(天字銃筒)‧ 중화포(中火砲)를 지자총통(地字銃筒)‧ 소화포(小火砲)를 두 종류로 구분하여 현자총통(玄字銃筒)과 황자총통(黃字銃筒)으로 명명하여 조선 역사상 최초로 화약무기 시대를 열었다. 세종은 그 뒤에도 계속 화약무기 개량에 주력하여 1발에 화살 2전과 4전, 8전을 쏘는 화포를 개발하였고, 여진족 정벌과 격퇴의 실전에 배치하여 최윤덕과 김종서로 하여금 대승을 거두게 하였다. 조선왕조 5백년 역사상 세종임금 만큼 오래도록 전쟁을 치룬 임금도 없을 것이다. 즉위년도의 대마도 정벌에 이어 2차에 걸친 만주벌의 여진족정벌, 조선의 국토 알목하와 경흥에 둥지를 틀었던 여진족 격퇴와 침략방어전쟁 등 재위 32년간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 수많은 전쟁에서의 승전 요인이 바로 막강한 화약무기의 위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세종은 이천, 이순지, 정초 등 천문학자와 천재적인 발명가 장영실을 발굴하여 천체(天體)의 원리와 이치를 연구하게 하여 혼천의, 일정성시의, 경점지기, 앙부일구 등 천체관측기와 물시계 등을 발명하여 찬란한 문화시대를 이루었다. 세종은 다사다난한 국정을 일일이 청단하면서도 9백60여 종류의 질병 증세와 1만7백여 종류의 약방문을 수록한 의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 간행케 하여 백성들의 질병치료와 퇴치에 일대 혁신을 이룩했으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간행하여 도와 예의 근본을 삼게 하였으며, 법전(法典)인 경제속육전(經濟續六典)을 간행하여 나라의 법을 바로 세웠고, 나라 경영의 근간이 되는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를 간행하는 등 수많은 문화와 문물을 창달하여 태평성대의 기반을 다졌다. 대왕세종은 재위 32년간 단 하루도 편히 쉬는 날 없이 오직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을 위한 치세에 온 몸을 바쳤다. 세종은 재위 20년이 되면서부터 온갖 환후에 시달리면서도 죽음을 무릅쓴 그 처절한 노력의 결과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였다. 대왕세종과 훈민정음만으로도 조선왕조의 500년 역사는 오늘날까지 찬란하고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박충훈